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忠孝禮정신과 義 - .....아. 화랑도 「반굴과 관창」의 忠


7월 9일에 김유신의 신라군과 만나 양국의 운명을 결정할 큰 격전을 시작하였다. 그 때에 계백은 장병들에게 「옛날 월(越)나라 임금 구천(句踐)은 오천군사로서 오(吳)나라의 70만 군을 격파하였으니, 이제 여러분은 마땅히 기운을 떨치고 힘을 다하여 승리를 쟁취함으로써 나라의 은혜를 갚을 지어다」고 격려하며 드디어 신라군을 진격하니 신라군은 당할 수가 없었다.
이리하여 혈전에 혈전을 거듭하면 할수록 신라군의 사기는 떨어지고 신라군은 피로하였다.
김유신의 아우 흠순(欽純)은 그의 아들 반굴을 격려하였더니 백제군의 진중에 뛰어 들다가 장렬한 전사를 하였다. 이에 뒤이어 품일(品日)이 또한 소년인 그의 아들 관창(官昌)에게 삼군(三軍)의 모범이 될 것을 권유하여 관창이 창을 들고 말을 달려 백제 진중에 뛰어 들어갔다.
 

계백은 관창을 사로잡았으나 그의 어리면서도 용감한 것을 못내 갸륵히 여겨 참아 죽이지 못하고 신라는 가히 당적치 못할 것이로다. 소년도 오히려 이러하거늘 하물며 장년들이랴」고 탄식하며 그대로 돌려보냈다.
관창이 비록 적이라 할지라도 소년으로서 나라를 위하여 죽음을 돌보지 아니하고 용감히 덤비는 데야 천고의 용사 계백이 어찌 또한 감격치 아니할 수가 있으랴. 계백의 무사(武士)적 정신은 실로 이 한가지 예로도 역력히 엿볼 수 있다.
관창은 본진(本陣)에 돌아와 「내가 적진에 들어가 적장을 베고 적의 기(旗)를 빼앗아 들고 돌아오지 못한 것은 죽음을 두려워해서가 아니다.」하고 다시 손으로 샘물을 움켜 마시며 백제 진중에 뛰어들자 그제는 계백도 하는 수 없이 그의 목을 베고 그 머리를 말안장에 붙들어 매어 신라 진중으로 돌려보냈다.
  

이 꼴을 당한 품일 은 피 흐르는 관창의 머리를 들고 「내 아들의 면목은 살아 있는 것 같다. 나라 일에 능히 목숨을 바쳤으니 다행이구나.」하고 부르짖었다.
이 광경을 본 신라의 군사들은 갑자기 울분과 흥분이 뒤섞여 백제군을 향하여 맹렬히 공격하였다.